일상 안에서 혹은 사건 속으로

이 희상은 배회한다. 뚜렷한 목적도 방향도 없이, 때로 우리가 무료할 때 그렇게 하듯, 하릴없이 거리를 산책한다, 물론 카메라와 함께. 그러다가 문득, 아마도 굳이 찾았던 것도 아닌 어느 순간을 렌즈로 포획해서 필름 위에 감광 시킨다. 이 희상의 프레임 공간 안에 들어있는 건 그런 우연의 시선들이 해후했던 일상의 순간들이다. 그 일상의 장면들은 이 나라의 것이기도 하고 물 건너 일본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그 장소성과 무관하게 모두가 평범하고 그래서 고요한 풍경 이미지들이다. 하지만 그 고요한 평범함의 풍경 속에는, 자세히 응시하면, 두 개의 시선이 겹쳐 있다. 하나는 먼 시선, 대상을 미리 정해진 목적에 따라 포획하지 않으려는, 말하자면 무의도적이고 방관자적인 시선이다. 다른 하나는 밀착적 시선, 특정한 동물을 추적하는 수렵가의 그것처럼, 대상 안에 담겨있는 그 어떤 특별한 것을 추적하고 포획하고자 하는 집요한 시선이다. 이 두 시선의 겹침 혹은 엇갈림이 이 희상의 평범하고 조용한 일상 사진들에게 특별한 언어를 수여한다. 이 언어는 무엇일까? 그 언어는 보는 이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이 희상의 사진들을 나는 세 개의 층위로 이해한다. 우선 ‘일상의 층위’가 있다. 이 희상의 사진 공간 안에는, 이미 말했듯, 이 나라 또는 딴 나라의 일상 이미지들이 들어있다. 그런데 그 일상의 모습들은,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아무 것도 특별하지 않아서 오히려 특별하다. 일상을 주제로 하는 사진들은 물론 많지만 그러한 사진들이 보여주는 이미지들은 대부분 의식적 일상, 대도시 생활의 메커니즘을 따라서 바쁘게 수행되는 활동들, 그러니까 우리가 생활의 리듬으로 늘 인지하고 기억하는 목적적 일상의 모습들이다. 하지만 이 희상이 보여주는 이미지들은 의식되지 않은 채 존재하는 무목적적 일상의 모습들이다. 예컨대 하교하는 아이들, 주택가의 언덕길을 내려가는 남자, 굴다리를 건너가는 두 학생, 보도를 걸어가는 남자 등등의 이미지는 아무도 의식하지 않고 기억하지 않는, 그래서 숨겨진 채 존재하는 일상의 모습들이다. 하지만 의식적이고 목적적인 일상들 아래와 사이에서 존재하는 이 잊혀진 순간들은,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보다 더 사실적이고 본질적인 일상의 순간들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무목적적인 일상이 없다면 목적적 일상 또한 존재할 수도 수행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 희상의 일상들은 평범하고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그 일상들은 심층적이고 본질적이다.

다음으로 ‘사건의 층위’가 있다. 이 희상이 먼 시선으로 포착하는 일상의 모습들은 평범하고 조용하지만 그러나 그 이미지들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평범하지도 고요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그 지나가는 일상의 이미지는 또 하나의 시선인 집요한 밀착 시선에 의해서 생생하고 살아있는 사건의 이미지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 일상 속의 사건성은 이 희상의 사진들 안에서 무엇보다 ‘동시성’을 통해서 드러난다. 예컨대 언덕길을 걸어가는 남자와 우연히 같은 길을 가다가 담 위의 꽃을 따는 여자, 야구를 하는 아이와 그 아이의 그림자, 걸어가는 여학생과 그 여학생의 걸음 방향과는 동일한 방향을 지시하는 거리 팻말의 그림자, 모두가 함께 창공을 날아오르는 새떼들, 서로 그리워하고 있는 것처럼 짝 지워진 창문과 그 창문으로 타오르는 연기... 이 희상의 밀착 시선이 포착해서 프레임 안에 담는 일상의 모습들은 모두가 동시적 사건들의 기록이다. 하지만 그 사건들은, 흔히 사건이 그렇게 이해되듯, 특별히 눈에 띠거나 놀라게 만드는 그런 사건, 그러니까 놀람이라는 코드를 따라서 우리가 받아들이는 매커니즘적인 사건들이 아니다. 이 희상의 렌즈가 포착해서 기록하는 일상 속의 사건들은 코드와 매커니즘을 이탈하는 사건, 그래서 얼핏 보기에 놀라움의 대상이 아니지만 그 우연성 때문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탈코드적 사건들이다.

마지막으로 ‘존재의 층위’가 있다. 이 희상의 사진들은 일상 속에 사건으로 존재하는 동시성을 기록하지만 그 기록이 다만 시간적 우연성만을 재현하는 건 아니다. 보다 중요한 건 그 우발적 사건들 안에 내포된 존재적 성격이다. 이 희상의 사진들 안에서 존재적 성격은 두 가지 특성을 통해서 나타난다. 하나는 일상의 사건들 안에서 동시성과 더불어 또 하나 주목되어야 하는 특성, 즉 사건을 일으키는 요소들 간의 관계이다. 일상 속의 사건들은 이 희상의 사진들 안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사건들은 확장되어 인간과 사물, 사물과 사물들 사이의 시공간적 동시성을 통해 렌즈 안으로 포착된다. 예컨대 팔짱을 끼고 우뚝 선 공사장의 기술자와 등 뒤에서 직립한 크레인 기둥은 그 동시성의 사건 안에서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광장을 걸어가는 두 사람과 두 인형은 구분되지 않으며, 날아오르는 새들의 비상선과 역시 하늘로 솟아오르는 건축물의 상승성은 변별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사건의 탈 경계성과 더불어 또 하나 주목되어야 하는 건 그 사건들의 과정적 성격이다. 다시 말해 이 희상의 렌즈가 포착 정지 시키는 탈 경계적 사건들은 그 자체로 고정된 순간이 아니다. 그 동시성의 순간은 과정적 순간, 포착되는 동시에 사라지지만 또 다른 우연성 안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내게 될 생성의 순간이다. 반복적이지만 늘 새롭게 이어지는, 메커니즘의 일상 속에서는 잊혀지고 의식되지 않지만 우연적 일상의 사건들 속에서 면면히 존재하는 이 생성의 순간들 - 이 희상의 사진들은 이 살아있는 우연적 순간들을 일상의 진정한 얼굴로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가 그의 일상 사진들 앞에서 잠시 발을 멈추게 되는 것 또한 그 살아있는 생성의 일상에 대한 새삼스런 기억 때문일 것이다.


김 진영 (예술비평. 철학 아카데미)